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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향해 뛰자
스타트업 IR 행사에서 배운 영업의 본질 (feat. 스펙보다 '고객 경험') 본문

어느덧 유난히도 길고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옵니다. 다들 결실을 맺는 풍요롭고 행복한 가을 시즌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매일 실험실 도면과 견적서로 씨름하는 영업 현장 외에도, 틈이 날 때면 다양한 기업들의 IR(Investor Relations) 행사나 네트워킹 모임에 참석하곤 합니다. 단순히 명함을 주고받기 위함이 아니라, 기업을 이끄는 결정권자인 대표님들을 직접 만나 그 회사가 세상에 던지고자 하는 '비즈니스의 본질'을 가장 날 것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행사장에 들어설 때마다 투자자(VC)의 매서운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비전을 증명하려는 대표님들의 치열한 에너지를 느낍니다. 저 역시 이전 직장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표님과 밤을 새워가며 IR 자료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기에 그 간절함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수많은 IR 피칭을 지켜보며 항상 제 머릿속을 맴도는 묵직한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과연 세상을 바꿀 훌륭한 아이디어와 이를 평가하는 투자자의 시선 사이에는 왜 이토록 깊은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
1. 완벽한 숫자(스펙)인가, 치열한 고객 검증(경험)인가
언젠가 한국이 아닌 미국 시장 투자를 목표로 철저히 준비 중이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참여한 현지 초기 투자 프로그램의 요구사항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달랐습니다.
"아직 완벽한 제품(솔루션)을 만들지 마십시오. 대신 이 제품이 세상에 진짜 필요한지, 수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 '정당성'을 증명해 오십시오."
이 이야기는 제게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국내 투자 시장의 경우 "아직 완성된 시제품이 없는데 어떻게 투자를 결정하느냐", "너희의 성과를 증명할 객관화된 데이터를 가져와라"라며 철저히 결과론적이고 숫자 중심의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수많은 잠재 고객과 부딪히며 '정당성'을 찾아오라는 그 해외 프로그램의 철학은 비즈니스의 진짜 핵심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창업자는 그 치열한 인터뷰 과정을 통해 스스로 사업의 뼈대를 단단하게 세우고, 투자자는 단순히 엑셀 시트 위의 숫자가 아니라 '이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태도와 과정'을 믿고 투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진정한 의미의 신뢰(Loyalty)가 형성되는 순간입니다.
2. 연구원의 예산 집행 역시 우리를 향한 '투자'입니다
이 IR 현장의 깨달음은 제가 매일 마주하는 B2B 이화학 장비 영업 현장과 완벽하게 겹쳐졌습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장비를 도입하는 연구원과 교수님들의 결정 역시, 그들의 한정된 예산과 연구의 미래를 비전바이오넥스라는 기업에 맡기는 '중대한 투자'입니다.
그렇다면 영업사원인 저는 저의 투자자(고객) 앞에서 어떤 방식의 IR(영업)을 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차가운 잣대를 들이미는 일부 VC들처럼 "우리 장비의 스펙(숫자)이 이렇게 우수합니다", "이만큼 납품 실적(데이터)이 있습니다"라며 단순한 팩트만 밀어 넣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진짜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카탈로그의 스펙이 아닙니다. 연구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그들이 현재 어떤 실험적 난관에 부딪혔는지 살피고(인터뷰 및 검증), 우리의 장비가 그들의 치열한 연구 프로세스에 어떤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솔루션)를 함께 고민할 때 비로소 굳건한 파트너십이 탄생합니다. 단순한 '하드웨어'의 전달을 넘어,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영업의 패러다임이 진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비상장 자생 기업, 우리 회사의 뚝심
참고로 제가 몸담고 있는 우리 회사는 외부의 대규모 투자를 쫓거나 무리하게 상장(IPO)을 추진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보다는, 우리 손으로 직접 깎고 조립한 훌륭한 장비와 그로 인해 창출된 탄탄한 자체 매출만으로 묵묵히 성장해 온 '자생력 있는 기업'입니다.
저희 대표님의 경영 철학 역시 명확합니다. 굳이 상장이라는 타이틀을 쫓기보다,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력과 내실을 단단하게 다지며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벤처캐피탈(VC)에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IR 자료를 당장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그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저희의 '진짜 투자자'인 현장의 연구원님들에게 쏟아붓습니다.
투자사의 냉혹한 잣대와 투자를 갈망하는 기업들의 간극을 지켜보며, 저는 다짐합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저와 우리 회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면, 잘 포장된 숫자가 아닌 '고객의 현장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낸 치열한 경험'으로 증명하겠다고 말입니다.
마치며
글을 쓰고 현장을 누비는 영업사원으로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비즈니스 파트너를 결정하거나 중요한 예산을 집행하실 때, 눈앞의 '완벽한 숫자(스펙)'와 현장에서 묻어나는 '진정성 있는 가능성(경험)' 중 어떤 것에 더 마음이 움직이시나요?
각자의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실 여러분의 통찰력 있는 인사이트가 궁금합니다. 편하게 댓글로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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